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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별로 자취 문화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Panda House 2024. 6. 4. 15:34

안녕하세요? 1인 가구와 자취 생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쯤 궁금해 했을 '자취 문화의 역사'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혼자 살며 자취하는 생활 방식은 최근에야 일반화된 문화일 뿐, 그 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답니다. 특히 국가와 지역마다 자취 문화가 생겨난 배경과 전통이 조금씩 달랐는데요. 오늘은 흥미로운 자취 문화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1. 한국

먼저 한국의 자취 문화를 살펴볼까요? 조선시대 양반가 자제들이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며 지내던 '공동기숙사'가 자취 문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상촌기생담'에도 이런 공동기숙사 생활이 잘 묘사되어 있더라고요. 조선시대에는 서울로 유학 온 선비들을 위한 기숙사 문화가 발달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자취 생활 전통을 엿볼 수 있죠. 기숙사는 주로 남학생들을 위한 곳이었는데, '서울자취(漢陽寄食)'라고도 불렸습니다. 지방에서 온 유생들이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며 기거하던 곳이었죠. '서울자취'라니 힙합니다. 무슨 요즘 공유 경제 어플 이름 같죠?

다양한 형태의 기숙사가 있었지만, 대체로 생활 방식은 비슷했습니다. 함께 기거하며 규율을 지키고, 공부와 토론을 했죠. 특히 저녁 시간에는 많은 인물들이 강학하고 모여 인생과 학문에 대해 논의하곤 했다고 해요. 선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인생에 대해 토론하며 동기들과 교우하던 생활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학 기숙사와 궤를 같이하는 자취 생활이었던 셈이죠. 이처럼 조선시대 기숙사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의 자취 생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일부 계층에 한정되었지만, 배움과 성장을 위한 자취의 정신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본격적인 자취 문화는 1960년대 이후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부터입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괜히 나온게 아니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대학생들이 하숙집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것이죠. 당시 하숙비는 4천원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월 40만원에 한양대 앞 단칸방에 하숙을 했는데요. 하루 두 끼가 집밥으로 제공되고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습니다.


2. 일본

반면 일본의 자취 문화는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15세기 무렵부터 에도(도쿄) 지역으로 학문을 배우러 온 학생들이 자취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학생들의 자취 생활은 정말 열악했습니다. 에도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빈민가에서 자취했습니다. 황폐해진 빈민가 건물이나 절간에 모여 살면서 공부에 전념했던 것이죠.

주거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구렁이 집'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거주지 외에도 생활 여건이 참 열악했습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굶주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해요. 소설 '무사시노 따라 부치'에는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는 학생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밥그릇을 구할 형편도 되지 않아서, 나무 조각이나 버려진 옹기 조각 등으로 대신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말 가난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고된 생활 탓에 허약해져 병을 얻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병석에서도 공부를 하다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고 하네요. 참으로 열악하고 굶주린 생활이었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인내와 끈기를 길렀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들을 지탱해주었던 것이죠.


3. 유럽

유럽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다양한 형태의 자취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15세기 경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생겨났고,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고 해요. 빈민층 젊은이들은 그냥 허름한 거처에서 자취하기도 했죠.

그 중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프랑스의 '가르니' 문화랍니다. 파리 중심가에서 벗어난 가난한 지역에 있던 소규모 주거 공간을 말하는데,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자취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해요. 상상만 해도 로맨틱한 자취 생활이 아니었을까요? 19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가르니에 모여들어 자취 생활을 했던 것이죠.

왜 이렇게 예술가들이 가르니로 몰려갔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임대료가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파리 시내 중심부의 주거비는 너무 비싸 가난했던 예술가들이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시 외곽의 가르니라면 적은 비용으로도 기본적인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죠. 전기와 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예술가들에게는 그것이 큰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르니는 저렴한 임대료 외에도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해주었죠. 주거 규제나 금기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몽마르트 언덕 부근의 가르니 지역은 파리에서 가장 예술가 문화가 발달했던 곳이었습니다. 피카소, 반 고흐, 모딜리아니 등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자취하며 작품 활동을 했죠.

가르니의 생활 환경이 열악했지만,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보헤미안 생활'이라 낭만적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술과 음악, 그림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분방한 예술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가르니 생활은 비록 가난했지만, 예술가들에겐 창작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예술가들의 낭만적 자취 생활 문화였던 셈이죠. 프랑스 정부는 가르니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현재 일부 가르니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르니 지역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지속되는 가르니의 보헤미안 문화가 프랑스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죠.


이처럼 국가와 문화권마다 자취 문화가 생겨난 계기와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 기본 정신은 비슷했습니다. 바로 '배움'과 '성장'을 위한 것이었죠. 어렸을 적부터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자립하며 삶의 경험을 쌓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시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자취 문화의 의미도 변천을 겪어왔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자취 문화를 넘나들며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깨달음이 있을 것 같네요. 그럼 다음 기회에 또 다른 자취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예전 내 자취방 모습